소연은 간만에 잘 신지도 않는 굽 높은 구두를 신고 외출용 옷을 입었다.
'내가 가려는 데에, 이런 걸 입고 가야 하나?'
스스로도 부끄러웠지만, 왠지 갖춰입고 가고 싶었다. 그녀가 가려는 곳은... 경찰서였다.
집을 나서서 걷는 동안 생각해봤지만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었다. 적어도 경찰서에 불려갈 만큼은!
저번에 선배 등쳐먹은 것 때문에 그런가? 아냐, 그때 분명 그 선배가 말했다. 밥 사준다고. 밥값으로 30만원이 넘게 나왔다고 경찰서에 신고를 했다니.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는구나 소연아. 아니면, 아니면.
심란해지는 발걸음으로 소연은 계속해서 서울지방경찰청사를 향했다.
[김 소연 씨라고요.]
사방에서 아아, 좀 놔줘요! 야이 뭣같은 놈아. 욕소리와 한숨소리, 그리고 탄식과 용서를 비는 소리가 울려댔다.
소연은 온 몸이 벌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 이런 곳을 와야 하는 거야? 어깨에 문신을 한 떡대들도 보이고, 밤 업소에서 일하는 듯한 아주머니들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의 남편으로 보이는 이들까지도.
아 제발 뭔 일이 있는지 빨리 알려주고, 별일 없으면 여기서 날 내보내줘, 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녀에게 이름모를 형사는 씩 웃으며 말했다.
[아, 별일 아니니까 그렇게 떨지 마세요. 잡아먹으려고 부른 건 아닙니다.]
별일이 아니라고? 경찰청에 불려왔단 말야! 평범한 사람이 일반 동내 경찰소도 아니고, '서울지방경찰청사'에 불려오는 일이 몇번이나 있겠나? 경찰청이란 말이다 경찰청. TV에서나 보던 장소. 그녀는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간신히 떨어지지 않는 입을 열어 말했다.
[무슨... 일로 부르셨죠?]
[아 그건 강력 8반에 가보셔야 할것 같은데요?]
하, 참. 강력 8 반이라. 그녀는 일이 꼬여도 제대로 꼬인 것을 느꼈다. 강력반에 내가 취조당할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혹시 내가 어디서 깡패들이랑 엮인건 아닐까? 저번에 같이 클럽에서 놀던 남자가 혹시... 연쇄살인범이었다던가! 어머, 그럼 그 사람하고 같이 간 모텔에서 내가 사진이라도 찍힌 건 아닐까? CCTV는? 내 일상은? 그리고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설명드려야 하지?
그녀가 혼자 끙끙 앓고 있던 것이 불쌍했는지, 형사는 가능한 밝아보이려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했다.
[별 일 아닙니다. 진짜로요.]
가보시면 알 겁니다.
그녀는 제발 그 형사가 말 한 대로, 진짜 별 일이 아니기만을 빌면서 안내받은 대로 강력 8반이 일하는 방을 찾아 경찰청 안을 걸어갔다. 내부로 들어오니, 막 들어왔던 그 때처럼 소란스러운 분위기도 아닌지라 소연은 간신히 자신을 다독일수 있었다. 진짜, 별 일 아니라면 신고할 거라고. 사람을 함부로 경찰청으로 부르다니. 민중의 지팡이가 맘대로 할 만한 일이냐고!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얼마 걷지 않아 강력 8반이라고 쓰여진 조그마한 간판이 보였다. 학교 교실에나 붙어있을 법한 작은 간판이었는데 아래에 뭔가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왠지 교무실 찾아가던 분위기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8반의 문을 열었다.
안은 한적했다. 형사들 여섯 명 정도가 컴퓨터를 투닥거리거나, 조서를 살펴보거나. 혹은 서류를 뒤적거릴 뿐이었다. 생각하던 이미지와는 다르게도 형사들은 모두 대학물좀 먹은 얌전해 보이는 얼굴들이었다. 언뜻 생각하면 이곳이 경찰청사가 아니었다면 일반 회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던 경찰이 열리는 문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소연을 멍하니 바라보다 말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함부로 들어오시면 안 되는 곳인데요?]
당신들이 불렀잖아. 소연은 머리 끝까지 솟아오르는 화를 간신히 참아내고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 소연이에요. 어제 전화하셔서...]
[아, 게임 아이디 RTs♡tranS™님 맞으시죠?]
어?
소연은 갑자기 온 몸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강력 8반 아래 조그맣게 쓰여진 글자가 갑자기 머리속에서 확대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상현실 멀티플레이 온라인 게임 수사특설반'
2년 전부터 유행하게 된 가상현실게임 중에서 전 남친과 함께 Rs-Online이라는 가상현실 게임에 발을 들여놓은 그녀는 이제는 나름 그 게임 안에서 유명한 유저였다. 게임 아이템으로 현실에서 부당거래를 하기도 했으며, 나름 전 세계 Rs-Online 게임 유저들 안에서는 손꼽히는 유명한 게이머로서 재미로 PK를 할수 있는 몇 안되는 괴팍한 유저로써도 유명했다.
[아, 저기.. 저기..]
[일단, 앉으시죠. 반장님 모셔오겠습니다 장 형사님.]
[으응, 갔다 와.]
장 형사라는 사람에게 소연의 신병을 인도하듯 말한 형사는 '반장님'이라고 불린 사람을 찾으러 밖으로 나가버렸다.
소연은 패닉 상태에 빠져버렸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나 진짜 잘못한거잖아. 그녀가 팔아먹은 게임 아이템은 시가 2백만원 3백만원에 팔렸으며, 불법 게임 아이템 거래 사이트에서 거래한 물건들이었으며... 더욱이 게임 하던 사람들을 속여먹고 판 아이템도 꽤 됬었다. 거기다 게임 잘 하던 얌전한 유저들을 함부로 pk를 걸기도 했지.... 아악! 얼마나 잘못한 게 많은거야?! 그녀는 앉은 상태에서 벌벌벌벌 온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를 의식하는 형사들은 아무도 없었다. 소연이 온몸을 벌벌 떨던, 말던.
서류를 살피던 형사 중 하나가 툭 하고 한 마디를 던지자 소연은 온 몸의 땀이 쭉 식어버리고 등이 꼿꼿해지는 것을 느꼈다.
[야아, 이거 악질이네.]
옆에 있던 형사는 '반장님'을 모시러 간 형사의 컴퓨터 앞으로 가서 뭔가를 주르륵 읽더니 한숨을 폭 하고 내쉬었다.
[적어도 징역감인데요?]
[응. 봐줄래야 봐줄수가 없는거지 뭐.]
밖에서는 별 일 아니라면서!!
징역감?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게임 아이템좀 팔고,pk거는 건 다른 사람들도 수두룩하게 하는 일이라고!
화가 남과 동시에도, 몸이 벌벌벌벌 떨리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아아 어떻게 하지? 재판을 가야 하나? 재판을 가더라도 게임때문에 징역이 내려질 뻔한 여자애를... 회사에서 써주기나 한다니? 나 결혼은 어떻게 해? 소연이 온갖 생각에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몸이 무거워질 때쯤, 반장님을 찾으러 갔던 형사와... '반장님'이 들어왔다.
[김 소연 씨죠?]
[아.. 예.]
생각보다 정중한 말투였다. 그러나 소연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고개를 폭 숙인 체로, 그녀는 무슨 이야길 듣게 될지 두려움에 벌벌 떨 뿐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반장님'은 한숨을 내쉬며 주변 형사들을 향해 질렸다는 식으로 말했다.
[.. 너네 장난이지? 이거.]
사방에서 피식피식, 낄낄, 하하하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엥? 뭔 일이야? 소연은 간신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펴 보았다.
형사들은 조서나 서류를 옆으로 재끼고 말했다.
[이 아가씨 벌벌 떠는게 재미있어서요. 근데 진심입니다? 이 아가씨가 한 일 치고는 너무 큰 일이에요. Rs-Online정도면 꽤나 큰 온라인 게임인 모양인 데다가, 요세 유행인데 함부로 남의 케릭터 죽이고 다니고. 불법거래소에서 아이템 팔고. 차익으로 세금도 안 떼고 가져간 돈이 무려 2천만원이더군요? 징역감 맞죠.]
[..장 형사.]
끄응, 하는 한숨과 함께 '반장님'이란 사람이 말을 이었다.
[징역감은 아니잖나.. 따지고 보면 우리 말고 직접 발각해서 신고한 사람도 몇 없고. 그냥 반성문 몇 장 쓰고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하면 되지 않나?]
[그거야 반장님 생각이시구요.]
소연은 생각보다는 일이 크게 번지지 않을 것 같자 그제야 몸에 떨림이 조금씩 멎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반장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꽤나 잘못하시긴 한 모양이네요, 스스로도 무서워 하셨을 정도면.]
소연은 아직 얼굴을 보지도 못한 반장을 향해 죄를 성토하듯 말을 토해냈다.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이렇게 큰 일이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근데 아이템 판 건 남친이 해어지겠다고 막말하고.. 아니 만나서 한 것도 아니고 게임 안에 들어와보라 그러더니 대뜸 해어지자고 하잖아요.. 그래서 짜증나고 슬프고 못됬고 하다보니까 그놈 게임 안에서만 때려 죽이고 아이템 비싼거 몇 개 팔다보니까 그렇게 된 거고... 그러는데 그날 커플이 제 앞에서 걷..아니 알짱대면서 저 놀려대서 죽인거고 하여튼 잘못했어요. 제발 봐주세요.]
어느세 소연은 울컥울컥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경찰들은 모두 '허, 참.' 하는 기분으로 그녀가 진정할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반장은 그녀가 눈물을 그치자 방금 타온 커피를 내밀며 말했다.
[이제 진정하셨나요?]
[흐그, 흑. 예. 예.]
패애애애애앵! 소연은 손수건을 들고 시원스래 코를 풀었다. 따끈한 커피를 마시니 조금은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그녀는 한숨을 내쉰 다음 어지러진 화장을 감추고자 고개도 들지 않고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강력 8반을 뛰쳐나갔다.
[으하하하하하! 와아! 아, 아 배꼽이야!]
킥킥킥 하하하 하는 소리와 함께 강력 8반 형사들은 반장을 빼고 배꼽 빠진다는 듯이 웃어재끼기 시작했다.
[자기 잡아가려는 줄 알았나 봐요.]
[내가 본 서류는 다른 놈 파일인데 크크크큭. 하하하!]
[자네들이 좀 심했어.]
반장은 간신히 그들은 진정시키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착한 사람 같은데 놀려먹으면 쓰나?]
[여기 불려와서 벌벌 떨 정도면 착한 사람이라고 단정짓기는 쉽지 않죠. 적어도 그녀가 한 짓이 전부 올바른 게임 플레이었다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반장님.]
반장은 담배를 입에 물고, 창문을 열어재꼈다.
[아, 반장님 여기 금연구역입니다?]
[좀 봐줘봐.]
[안 돼요.]
소연이 다시 8반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한 20여분 뒤였다. 눈물로 얼룩진 화장을 다 깔끔히 정돈하고 돌아온 그녀는 조금이나마 당당한 모습이었다. 반성문 쓰고, 죄송하다고 하고. 집에 가자.
[반성문 주세요.]
그녀는 당당하게 요구했다. 그 사이 반장은 강력 8반을 비운 사이였다.
형사들은 다시 낄낄거렸다. 아 뭐야? 왜? 소연은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반성문 쓰고 보내주려는거 아니었어?
장 형사는 소연에게 말했다.
[아, 반장님 오실때까지 기다려 주시겠어요?]
[...그냥 쓰고 있으면 안되나요?]
다시 웃음이 터져나왔다. 지금 나 놀려먹는거지? 소연은 머리속 가득히 화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 8반의 문이 다시 끼익 하고 열렸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그녀가 이상형으로 꼽던 남자가 한명 서 있었다. 이제 갓 서른이나 넘었을까? 지적인데다 말끔하니 잘 생긴 얼굴에, 살짝 근육이 잡힌 균형적인 몸매. 다정하게 보이는 뿔테안경을 쓴 남자였다.
[소연 씨?]
아, 이게 뭔 꼴이야! 그녀는 헛기침을 몇 번 한 다음에야 그가 자신을 불렀던 '반장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 반장님이시군요. 죄송해요.]
넋 나가 있어서.
반장은 그런 그녀를 보고 서류를 내밀었다. 한손 가득히 쥐고 있는 A4 용지를 보며 소연은 자신이 써야 할 반성문의 양이 꽤나 많다는 것을 느꼈다.
[이거.. 다 작성해야 하나요?]
내 죄질이 그렇게 나빴나. 소연이 서류를 받고 끙끙거리는 사이 반장은 고개를 절래절래 저었다.
[아닙니다. 뭔가 오해하셨나 본데, 저희는 소연 씨에게 죄를 묻기 위해 부른 게 아니에요.]
어?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그녀는 예상치도 못한 소리에 반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저희가 소연 씨를 부른 이유는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반장은 단호한,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를 계속 이어갔다.
[저희를 도와 주세요. Rs-Online팀에서도 소연 씨를 추천했습니다. 저희를 도와줄 사람으로서는 소연 씨가 제격이라더군요.]
아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알아듣게 설명해 달란 말야. 소연은 소리없는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장 형사는 그런 소연을 보며 킥 하고 웃더니, 설명 잘 못하는 반장을 대신해 말을 이었다.
[저희가 하는 조사는 신설된 '가상현실 온라인 게임 강력범죄수사' 입니다. 그중 가장 큰 Rs온라인을 맡게 된 거구요. 하지만 저희가 GM의 도움을 받아 조사를 하기에는 이쪽 세계는 너무나 옛날 온라인 게임하고는 다르더군요. 조사의 방향도 다르구요. 결국 유명 게이머중에 강력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낮고 심신에 문제가 없는 사람을 꼽아 저희를 도와 달라는 의뢰를 맞기던 도중이었습니다. 몇 명은 이미 수락했구요. 소연 씨를 부른 것도 같은 이유에서죠.]
....나보고, 게임 속 강력 범죄 수사를 도와달라고? 게임만 하던 사람에게?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소연은 얼떨떨한 눈으로 반장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
[...나랑은 끝까지 눈 안 마주치고 대화하시네.]
[반장님 인기 좋다.]
[크흠, 흠! 어, 어쨋든 이런 이야기입니다.]
반장은 소연의 눈을 바라보며 간절한 말투로 말했다.
[도와 주시겠습니까? 소연씨.]
그것이 정태진 반장과 김소연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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